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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일요한묘'에서 인천성지,수원성지 내려오고 있을때어느 자매님이 통화를 한다. 엄마, 여기 서울은 비가 오는데 성지순례를 어떻게 하고 있어?그랬다. 세번째 기적!!!여기는 정말 청아한 하늘과 바람이 맞아 주었다.한덕골 모진 박해를 피해 모인 교우들의 보금자리 한덕골(閑德洞)은 박해시대 천주교 인천성지,수원성지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들어 교우촌(敎友村)을 이루고 살았던 순교사적지입니다. 한국인 첫 사제인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1821-1846) 신부 가족들은 박해를 피해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를 거쳐 이곳으로 피난 와서, 인천성지,수원성지 처음에는 기거할 집이 없어 마을 근처 성애골(현재는 매몰되었음) 골짜기에 들어가 산(生) 나무와 산 나무에 칡으로 얽어매고 억새풀을 덮고서 살았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족보에 의하면 성 김대건 신부의 조부 김택현(金澤鉉, 1766-1830)과 인천성지,수원성지 숙부 김제철(金濟哲, 1803-1835)의 묘가 한덕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성 김대건 신부 가족들의 한덕골 피난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崔良業) 신부는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인천성지,수원성지 이듬해 귀국하여 이곳에 와서 중백부(仲伯父 崔榮謙)와 어린 동생들을 눈물로 상봉합니다. 최 신부는 그 이후에도 가끔 이곳에 들러 성사를 주곤 하였다고합니다. 이곳 한덕골 출신 순교자로는 성 김대건 신부와 부친 성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 인천성지,수원성지 1795-1839)을 비롯하여 김 시몬(1870년 순교, 40세), 김 마리아(1866년 순교, 42세) 등이 있습니다. 교회사 연구와 성지개발에 각별한 열정을 지닌 인천교구의 고 김진용 마티아 씨는 한덕골 순교사적지를 발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한덕골 인천성지,수원성지 사적지 부지 또한 손수 매입하여 수원교구에 기증하였다. 순교사적지를 관리하는 천리요셉 성당은 대형 십자가와 야외제대, 그리고 양옆으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상을 설치했고, 2010년 5월에는 파티마의 성모상을 설치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인천성지,수원성지 [출처 : 한덕골 순교사적지 안내판, 내용 일부 추가(최종수정 2015년 12월 1일)]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미사시간 안내미사시간 안내미사구분요일시간기타사항주일미사일06:30 미사 일정은 천리요셉 성당 것입니다.10:30 교중미사평일미사월06:00 화19:30 수10:00 목19:30 금06:00 토16:00 어린이미사(주일미사)18:30 주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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